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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꼬미의 탄생! 예정일 나흘 전에 갑작스런 입원?!

긴지긴지 2024. 11. 1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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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신기간은 아주 순탄했다.
아기도 계획하자마자 바로 생겼고,
남들 심하다는 입덧도 이 정도면 양호하게 넘어갔고,
아프지도 않았고,
모든 검사들도 순조롭게 넘어갔다.
(생각해 보니 꼬미 30주 차 때 부정맥 소견이 있었는데 2주 후 다시 검사했을 때 나아져서 지금은 임신 기간이 순탄했다고 말할 정도로 금방 떨쳐냈다.)
다른 사람들이 한번 갈까 말까 한 태교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매달 산부인과 가면서 긴장보다는 그 사이 얼마나 더 컸을까 기대감만 가득했는데,
예정일 나흘 전 마지막 검진 간 날 초음파 검사 때는 그동안이랑 분위기가 달랐다.

그날 진료는 유독 대기가 길었다. 공복 상태였는데 배가 고파서 오빠한테 우유 한팩 사 와 달라고 하고는 마시고 진료를 봤다.
여느 날처럼 초음파 보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쉬어야지 했는데...
"양수가 너무 없어요. 아기 오늘 꺼내야 할 것 같아요."
'?????'
양수가 부족하다는 소견은 오늘 처음이었다.
'양수가 왜 없지?'
게다가 너무나도 정확했던 나의 생체 리듬 덕에 왠지 예정일 딱 맞춰서 진통이 오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마저 있었는데

갑자기 지금 아기를 꺼내자는 말에... 그것도 원하던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로!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결국 진료 보자마자 갑자기 제왕절개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진료실 나오자마자 간호사가 수술 설명과 이런저런 동의서 서명 같은 거 시키는데 그냥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간호사의 물음.
"지금 공복 몇 시간이세요?"
'??? 나 방금 우유 마셨잖아...'
공복이었으면 전신마취를 하는데 공복이 아니니까 하반신 마취만 한다는 것이다.
"... 아기 꺼낼 때 좀 흔들리실 수도 있고요..."
수술이 하기 싫어서 아파도 자연분만 하려고 한 건데.
우유 한잔 마신 것 때문에

자면서도 아니고 정신 말짱한 상태로, 수술하는 소리도 다 들으면서,
심지어 아기를 꺼내면서 흔들릴 수 있다니

수술 설명이 뭐 이런가 싶으면서 황당 그 자체였다. 
수술을 위한 각종 검사를 위해서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나 진짜 오늘 수술하는 건가? 오늘 진짜 꼬미 만나는 건가?'
남편도 당황스러워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오늘 수술하는 거라고?"
라며 계속 되물었다.

 

검사를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태동 검사를 한다고 했다.
태동 검사는 분만실 안에 있는 분만 대기실에서 진행했다.
그곳은 입원실도 아니고, 검사실도 아니고, 진짜 분만실 들어가기 전에 산모 상태를 체크하며 언제 분만실에 들어갈지 지켜보는 곳.
배에 청진기 같은 것을 부착하고 태동 검사가 진행되었고, 검사를 마치자 담당의가 들어왔다.
"아기가 생각보다 잘 노네요? 수술 안 하고 내일 유도분만 해도 될 것 같아요. 엄마가 선택해요."
양수가 부족해도 아직 잘 움직이고 있었던 꼬미.
양수가 부족한 상태가 조금 불안했지만 이번주 내내 태동도 평소 같았고

하루 지난다고 꼬미가 갑자기 안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 원했던 자연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오늘 갑자기 수술을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있었다.

 

그렇게 다음날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하고 입원 수속을 하고 입원실로 들어갔다.
입원실에 들어와서야 방금 전까지 수술하러 들어갈 뻔했다가 번복된 것이 실감 나면서 안도감이 확 밀려왔다.
그래도 당장 내일 유도분만을 시작한다니 갑작스러운 것은 여전했다.
오늘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출산 가방도 안 가져오고 카시트 설치도 아직 안 했는데...
입원한 그날 저녁, 남편은 집에 가서 못다 싼 출산 가방을 싸고 카시트도 부랴부랴 설치하느라 밤늦게 돌아왔다.

 

이젠 정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사실 출산 과정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거나 알아보지는 않았었다.
뭣도 모르고 닥쳐서 하는 게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그냥 막연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뭣도 모르고 유도분만을 시작하고 나서야 유도분만이 이런 거구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태동 검사를 진행했던 분만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 대기실은 6-7개 정도의 침대들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 놓여 있었고, 분만실로 들어가기 전의 산모들이 거쳐가는 곳이었다.

그 대기실의 가장 안쪽 침대에서 분만 유도제를 맞기 시작했다.

유도분만은 아직 자연스럽게 진통(자궁 수축)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분만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자궁 수축이 올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 호르몬을 주사로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주사에는 단계가 있는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욱 강한 수축을 유도하는 듯했다. 배에 자궁 수축과 아기의 태동을 감지할 수 있는 기계를 부착하고 상태를 확인하며 유도제 투입 단계를 높여 나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생리통 같은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고 생각보다 참을 만했다.

10분 정도 간격에 통증은 몇 초 정도로 짧게 왔다.
가끔씩 간호사가 들어와 상태를 확인하면서 유도제 투입 단계를 하나씩 올려 나갔다.
단계를 올려 나감에 다라 통증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여전히 조금 아픈 생리통 정도의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니 주기적으로 내진이 시작되었다.
이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질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자궁 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얼마나 부드러워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나는 아기가 내려오지 않은 상태여서 손가락을 상당히 깊숙이 집어넣었고 통증이 상당했다.
내진 이후로는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도 했다.
몇 시간에 걸쳐 단계를 끝까지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진행이 더뎠고,

참을만하던 진통도 단계를 올리고 나니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팠다.
담당의가 진통제 맞겠냐는 말에 바로 맞겠다고 했고,
진통제를 맞고 나서도 참기 힘든 수준이었다.
심호흡을 하니 좀 버틸만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유도제 투여는 벌써 오후를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내진 때 경부가 2cm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고,

영 진행이 더디자 담당의가 이제는 아기가 힘들어 할 수 있다며 오늘은 이만 멈추고 내일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와... 출산이 이런 건가?'
오늘 하루를 넘길 줄은 몰랐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라니.
그래도 이날까지 느낀 통증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내일 다시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2cm 열린 경부가 초기화되거나 줄어드는 건 아닌 듯했다.

 

계속 상태를 체크해야 해서 대기실에서 입원실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편이 나가서 먹을 것을 사 와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날 다시 진행해야 해서 수액도 떼지 못하고 계속 맞고 있다 보니 몸은 띵띵 불어갔다.

남편도 그곳에 같이 있기는 힘들어서 입원실로 돌아갔고,

나는 태동을 지켜보며 분만 대기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밤새 대기실 커튼 너머로 많은 산모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산모는 진통이 와서 경부가 열릴 대로 열린 상태로 들어와 분만을 하러 나갔다.

어떤 산모는 아직 아기가 나올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자궁 수축이 와서 자궁 수축을 막는 주사를 맞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산모들이 먼저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유도분만이 더 힘들다는 엄마의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래도 내일은 정말 우리 꼬미를 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셋째 날.
이 날도 새벽부터 유도제 투여가 시작됐다.
입원실에서 밤을 지낸 남편이 돌아오기도 전에 유도제 투입이 시작되었고,
간호사가 바뀌었고,
유도제 투여 단계를 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삽시간에 진통 주기가 빨라지고 강도도 급격하게 세졌다.

 

사실 전부터 출산의 고통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얼마나 강한지 한 번쯤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는데

이 날 그 통증이 제대로 시작된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무거운 무언가가 아랫배를 꾹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심호흡을 해도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진통이 올 때마다 신음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얼굴도 마구 찡그려졌다.

 

잠이 부족해 보이는 남편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바닥에 깔린 간이침대에 누워서 자라고 했었는데,
진통이 심해지니 남편 손을 잡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었다.

다른데 힘을 주면 통증이 덜어지는 느낌?
진통이 올 때마다 자고 있는 남편에게
"오빠, 손!"
하고 소리쳤다.

 

진통 주기는 5분, 3분 줄어갔고 통증이 유지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이 정도면 많이 열리지 않았을까 싶어서 내진을 하면 2.5cm,
이 정도면 더 열리지 않았을까 싶어도 3cm.
내진하는 것 자체도 고통인데 경부가 열린 걸 확인해야 진행 정도를 알 수 있으니 내진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내진을 자주 하는 만큼 아프니까 최대한 참았다가 해달라고 하는데도 경부 열리는 속도는 더디고
"아기가 아직 안 내려왔어요."
"아직 경부가 부드럽지 않네."
이런 말 뿐이었다.
무통주사도 5cm가 열려야 맞춰준다는데, 대체 언제 5cm까지 열리는 건지.

그냥 맞춰주면 안 되나 싶었다.

 

그 사이, 아침에 새로 들어온 다른 산모가 나랑 비슷한 간격으로 진통이 오는 듯했는데,

더 버티지 못하고 수술하러 가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밀려오려던 찰나, 드디어 분만 대기실에서 가족 분만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주 푹신하고 각도도 살짝 기울어진 쾌적한 침대와 프라이빗한 공간.

가족 분만실로 옮기고 나니 무통주사를 위한 바늘도 척추에 꽂았다.

약을 투여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

 

더디던 전개가 이제야 진행되어 가는 듯한 기쁨도 잠시.
엄청난 진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심호흡이고 신음이고 뭐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통증이었다.
간밤에 진통이 와서 병원에 왔던 산모는 병원 오자마자 경부가 6cm 열렸다며 분만실로 가는 것 같았는데

결코 지금의 나처럼 아파 보이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도제를 너무 갑자기 올린 거 아닌가?'

'유도분만이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아프지 않았을 것 같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통 언제 맞아요? 너무 아파요!"
간호사한테 얘기해도 담당의가 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무통을 시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남편은 옆에서 안절부절못해하는데 간호사들은 일상인 것처럼 보였다.
"참으셔야 돼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입장이 이해가 갔지만 너무 아파서 뭔가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크게 소리를 지른 것 같다.
담당의 출근은 9시인데 아직 9시는 되지 않았고, 너무 절망적이었다.
욕도 나왔다.
"의사가 와도 무통 안 놔주면 나 수술해 달라고 할 거야."
남편에게 울면서 얘기했다.
이때는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 아파하니 간호사가 유도제 단계를 조금 줄이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예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사지가 떨어져 나간 사람이 고통에 못 이겨 그냥 죽여달라고 한다는 걸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생각날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고 했다.

 

9시가 지나고 드디어 담당의가 들어왔다.
내가 너무 아파하니 내진을 하고는 안쓰러워하며 어제 맞은 진통제를 권했다.
'진통제는 무슨 얼어 죽을 진통제?'
나는 이미 무통을 놔주지 않으면 수술해 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있는 상태였다.
"무통 놔주세요. 무통!"
의사가 어르고 달래듯 무통 주사를 놔주겠다며 나갔다.

드디어 척추로 차가운 무통약이 들어왔다.
무통도 드는 데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또 기다리나 싶더니만 금세 하반신의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무통 천국이라고 하나 싶었다.
진통은 아예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고 하반신 감각도 무뎌졌다.

이대로 계속되면 좋으련만 무통 주사도 분만을 시작하면 멈춘다고 했다.

 

아직 경부가 4cm밖에 열리지 않은 상태라 무통주사를 맞은 이후에도 경부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통증이 가시니 나도 남편도 그동안의 긴장의 끈이 풀리면서 가족 분만실에서 두 시간 넘게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나니 또 통증이 살살 느껴지기 시작했다.
'통증이 무통을 뚫고 나오나?'
이번 통증은 아랫배가 아닌 양쪽 골반 아래로까지 내려와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진을 해보니 이제는 경부도 많이 열리고 부드러워진 상태라고 했다.
6cm쯤 열렸다고 했나?

통증도 점점 다시 느껴지고 이 속도라면 2-3시간 안에 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점심시간쯤 됐을 때라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않은 남편에게 점심 먹고 오라고 하고 다시 잠드려는데,
남편이 나가고 나자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무통주사를 맞기 전에 느꼈던 고통이 다시금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간호사한테 말하니 내진을 하더니 갑자기 진행이 많이 됐는지 분만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남편이 오기 전에 아기를 낳기 시작할 기세였다.
얼른 점심을 먹으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빨리 와! 아기 나올 것 같아!"
간호사들이 착착 빠르게 분만 준비를 시작했고 나한테는 힘주는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담당의가 오면 바로 분만이 진행될 기세였다.

다행히 담당의가 오기 전에 남편이 돌아왔다.
하마터면 남편이 아기 나오는 걸 못 볼 뻔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간호사들도 우르르 들어와있었고 주치의도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다시 무통 주사를 맞기 전의 진통이 찾아왔고 정말이지 그 고통은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힘을 잘 줘서 빨리 아기를 낳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진통 오면 힘주세요."
희한하게 진통이 올 때 힘을 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시는 것 같았다.
무통 주사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무감각한 하반신에 어떻게든 아기를 내보내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엄마 너무 잘해!"
담당의가 막 칭찬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 제발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간호사들도 옆에 붙어서 힘주라고 열심히 부추기니 정말 더 쥐어짜 낼 힘이 없을 때까지 있는 힘껏 힘을 줬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침대위에 올라타서 윗배를 계속 아래로 누르는데

너무 아파 죽겠는데도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아프다고 말도 못 했다. 잠깐도 쉴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간호사가 눌렀던 윗배에도 멍이 들어있었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얼굴과 목에 실핏줄이 다 터져있었다.

힘을 줬다 뺐다를 열댓번쯤 반복했을까?
힘주기 시작하고 십여 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힘든 과정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에 엉엉 울음이 터졌다.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아보라고 주는데 너무 작고 소중했다.

이 감격스럽고도 복잡한 기분은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니. 이제 내가 엄마라니. 이 아기가 내 아기라니.'
남편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보였다.
잘 울지 않는 남편인데...
일생의 중대사의 시작점에서 함께 한 발을 내디딘 느낌이었다.
함께 지켜야 할 것이 생겼고 이제 진짜 가족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에 걸친 힘든 분만의 끝에는 그보다 더한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육아하면서 잠깐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며 이 글을 쓰다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날 당일만 해도 만약 둘째를 갖는다면 수술할 거라고 다짐했는데 회복하면서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나는 또 자연분만을 선택할 것 같다.
회복도 빨랐지만 아기 얼굴 보고 아팠던 그 기억이 가셨달까?
실제로 엄마가 힘들었던 기억을 잊는다는 연구가 있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보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기쁘고 감사했던 그날의 기억.
앞으로 다가올 꼬미와의 내 인생의 2막이 다시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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